9화: 필리핀 – 낯선 질문, 낯선 도시, 낯선 나

2025. 4. 10. 00:23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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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경찰이 물었다.
“Why do you come here?”
그 질문에,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여기가 어딘가’보다 ‘내가 누구였는가’를 되묻게 되었다.
모든 시작은 단순한 질문 하나였다.

"Why do you come here?"

왜 왔는가?
그는 정말 내가 왜 필리핀에 왔는지 궁금했을까, 아니면 수많은 낯선 이들에게 건네는 매뉴얼 같은 질문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 물음 속에서, 내 안에 숨어 있던 ‘이유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수많은 날들, 떠밀려 살았던 시간들, 도망치듯 찾아온 이 여정의 본질을 말이다.

낯선 도시의 향기

공항 밖으로 나서자, 습한 공기와 시끄러운 차 소리가 나를 반겼다.
낯선 냄새, 낯선 말투, 그리고 낯선 리듬.

누군가는 "모험"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휴식"이라 불렀지만
나는 이 낯선 도시를 내 “현실의 대체 공간”이라 불렀다.
익숙함이 너무 아파서, 모르는 것이 차라리 편해지는 순간.
이곳은 내가 나를 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요

그 질문을 들은 순간, 영어로 대답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진짜 왜 여기에 왔을까?
관광? 아니면 재충전?
아니, 어쩌면 그냥 도망.

지나온 시간들을 줄여 말하면
“Just travel”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담긴 내 인생은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무거웠다.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보기

낯선 도시에서, 낯선 언어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는 ‘나’라는 정체성을 조금씩 조각냈다.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다시 쌓아 올리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짜 내가 나올까 싶었다.

왜 왔냐는 질문,
그건 어쩌면 “너, 지금 괜찮아?” 라는 질문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그 질문에 아직도 대답을 못 한다.
대답이 필요 없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저 묻고, 그저 걷고, 그저 살아내는 것.


“Why do you come here?”

공항 경찰은 잊었겠지만,
나는 그 질문을 아직도 품고 있다.

왜냐고?

나는 아직도, 나를 찾는 중이니까.